정신병동 시화전
정신병동 시화전 5
이승하
매주 수요일 오전 11시
슬리퍼를 질질 끌며 휘파람을 휘휘 불며, 코웃음을 흥흥치며
시치료를 받기 위해 제3병동으로 모이는 우리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해 왔다갔다 하는 권형이
차분히 자작시를 낭송하는 시간
온종일 말 한 마디 없이 침대에서만 뒹구는 정씨가
남의 시를 비평하는 평론가가 되는 시간
시를 읽으며 우는 사람과 시를 들으며 웃는 사람은 여기밖에 없겠지
우리는 제각기, 스스로를 치료하기 위해 이곳에 모이지만
우리가 쓴 시는 미친놈의 시임을,
손수 그린 그림 위에 자작시를 써 벽에 붙이지만
이 또한 미친 짓임을, 우리가 더 잘 알지
얼마나 많은 고통의 덩굴을 헤치며 여기
제3병동 치료실까지 왔는지를
병원 밖 덜 미친, 아직 안 미친 당신들보다
우리가 더 잘 알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
차라리 그대의 이름으로 나를 잠들게 하라
그거 노래 가사 아녀? 조용필이 노래 아녀?
표절한 환자는 동료들의 아우성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제자리에 앉고
<그저께 주사치료를 받고부터 심신이 편해졌다>는
심씨의 시구에는 모두 고개를 떨군다
지금 바깥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을까
사람이 사람을 버려 영혼이 찢어짐을
사람이 사람을 멸시해 영혼이 피 흘림을
사람이 사람을 분노케 해 영혼이 고름 흘림을
시를 쓰면서, 시를 웩웩 토하면서 우리는 배웠다
내가 너한테 관심갖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를
네가 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를
누가 사랑을 아름답다 했는가를.
<그저께 주사치료를 받고부터 심신이 편해졌다
어둠에 엎드리는 저 땅처럼
참고 견디어 보자
보다 경건한 마음으로
밤을 지켜 빛나는 저 별처럼
묵묵히 기다려 보자
앞산 숲으로부터 들려오는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
저 새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 슬프지만
정신병동 밖 나와 너와 우리들의 내면에 너무도 천연덕스럽게
또아리 틀고 있는 모습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