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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아이 -에르바르트 뭉크의 그림 1

경오기 2010. 4. 10. 08:36

 

 

 

                  병든아이 

                                          이승하

 

 

손꼽 아 기다린 날 어린 날의 설날 아 침                              

누이는 설빔을 입고 방구석에 오도카니 앉아 발갛게 

한 자루 촛불로 떨고 있었다 먼 곳에서 밀물처럼

몰려온 친척들 썰물처럼 떠날 때까지 한마디 말이 없던

 

수줍음 많은 누이, 어둠의 심연으로 왜 숨고 말았을까

왜 숨쉬고들 있을까 내 철없이 죽음을 실험하려 했을때 

 - 작은오빠, 다시 집 나가더라도 자살은 하지마

 약 빼앗아 품에 넣고 한사코 안 주더니 회복 불가능한

 수동형의 삶을 내처 살고 싶었던 게지 스물세살부터

 

두 눈의 초점을 잃어갔다 심야에 부나방처럼 돌아다니고

창문에다 쾅쾅 담요를 치고, 식사 도중에 저 혼자서 

킥킥 웃기도 하고 퉁퉁 부은 눈으로 일어나기도 하고                                                               

고려대 부근 아무개 신경정신과 병원

- 가족이라도 3개월이 지나야 만날 수 있습니다

 

술병을 깨 들고 외치고 싶었다. 웃통을 벗고서

심판할테야! 너한테 폭력을 가한 우리 아버지를!

폭력을 사주한 우리 어머니를 ! 안암동에, 제기동에 

서울역 앞까지 파도가 쳤다 무너지는 건물들,

떠다니는 사람들을 보았다 수많은 상처받은 혼을

 

-작은오빠, 부모님을 그만 용서하자 우리도 죄가 많으니 

차라리 곱게 미쳐 용서하고 만 내누이야, 하나뿐인

이 지상은 명백히 꼬여 있는 질서로 움직이는데

너는 허공만 보고 있을래 멍하니, 그렇게 멍청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