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장미여관으로 !
마 광 수
만나서 이빨만 까기는 싫어
점잖은 척 뜸들이며 썰풀기는 더욱 싫어
러브 이즈 터치
러브 이즈 휠링
가자, 장미여관으로 !
화사한 레스토랑에서 어색하게 쌍칼 놀리긴 싫어
없는 돈에 콜택세, 의젓한 드라이브는 싫어
사랑은 순간으로 와서 영원이 되는 것
난 말없는 보디 랭귀지가 제일 좋아
가자, 장미여관으로 !
철학, 인생, 종교가 어쩌구저쩌구
세계의 운명이 자기 운명인 양 걱정하는 체 주절주절
커피는 초이스 심포니는 카라얀
나는 뽀뽀하고 싶어 죽겠는데, 오 그녀는 토론만 하자고 하네
가자, 장미여관으로 !
블루스도 싫어 디스코는 더욱 싫어
난 네 발냄새를 맡고 싶어, 그 고린내에 취하고 싶어
네 뾰족한 손톱마다 색색 가지 매니큐어를 발라주고도 싶어
가자 장미여관으로 !
러브 이즈 터치
러브 이즈 휠링
[마광수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머리말]
'장미여관'은 내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여관이다. 장미여관은
내게 있어 두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하나는 나그네의 여정(旅程)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여관이다.
우리는 잡다한 현실을 떠나 어디론가 홀가분하게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의 정체를 숨긴 채 일시적으로나마 모든 체면과
윤리와 의무들로부터 해방되어 안주하고 싶은 곳 -----
그곳이 바로 장미여관이다.
또 다른 하나는 '러브 호텔'로서의 장미여관.
붉은 네온사인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곳,
비밀스런 사랑의 전율이 꿈틀대는 도시인의 휴식 공간이다.
우리는 진정한 안식처를 직장이나 가정에서 구할 수 없다.
직장의 분위기는 위선적 체면치레와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혀
우리를 숨막히게 한다.
가정은 겉보기엔 단란하지만 사실상
갖가지 콤플렉스들이 얽혀서 꿈틀대는 고뇌의 장(場)이다.
가족관계란 싫든 좋든 평생 묶여서 지내야하는
굴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럴 때 우리는 잠깐만이라도
모든 세속적 윤리와 도덕을 초월하여 어디론가 도피함으로
써 자유를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장미여관------ 그 달콤한 음탕과 불안한 관능이 숨쉬는 곳,
거기서 우리는 비로소 자연의 질서와 억압에 저항하는
'관능적 상상력'과 '변태적 욕구'를 감질나게나마
충족시킬 수가 있고, 우리의 일탈욕구(逸脫欲求)를
위안받을 수 있다.
즐거운 권태와 감미로운 퇴폐미의 결합을 통한
관능적 상상력의 확장은 우리의 사고를
보다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인류의 역사는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꿈이 없는 현실은 무의미한 것이고 꿈과 현실은 분리되지 않는다.
이 시집의 표제로 삼은 <가자, 장미여관으로!> 를 쓴
1985년 여름을 전후하여 내 시 스타일은 많이 바뀌었다.
그 이전까지는 유미적 쾌락에의 욕구와 현실상황에 대한 고뇌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식의 내용이 많았다.
"여인의 긴 손톱은 섹시하다,
그러나 그런 손톱은 '민중적 손톱'은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공연히 '민중적 고뇌'로 괴로워하는 척하면서
지식인의 명예욕을 충족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초기작에서는 치열한 고뇌와 갈등이 엿보이는데
요즘 작품은 너무 퇴폐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해 주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오히려 나로서는
그 '치열한 고뇌의 정신'이 부끄럽고 창피하게만 느껴진다.
말하자면 나는 솔직하게 발가벗지 못하고
그저 엉거주춤 발가벗는 척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그런 지식인의 위선을 떨쳐 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아무런 단서나 변명 없이도, 여인의 긴 손톱은 아름답고
야한 여자의 고혹적인 관능미는
나의 상상력을 활기차게 한다.
모든 사람들을 다 민중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다 귀족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귀족들만이 누렸던 감미로운 사치와 쾌락을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의 내 생각이다.
사람들은 모두 '진정한 쾌락'을 위해서 산다.
지배계급에 대한 적의(敵意)는 쾌락에 대한 선망일 뿐,
숭고한 평등의식의 소산은 아니다.
누구나 잘사는 사회, 누구나 스스로의 야한 아름다움을
나르시시즘으로 즐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
일을 안해 '희고 고운 손'을 질투한 나머지
모든 여성의 손을 '거칠고 못이 박힌 손'으로 만들어 버리자고
신경질적으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
모든 여성의 손을 다 '길게 손톱을 기른 손'으로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현실 속의 나는 여전히 외롭다, 외롭다.
모든 도덕과 이데올로기를 떨쳐버리고
진짜 관능적인 사랑만 나누기를 나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과연 그 누가 나의 이 허기증을 달래줄 수 있을는지?
그 어느날에나 나는 상상 속의 장미여관이 아니라
진짜 현실 가운데 존재하는
장미여관에 포근하게 정착할 수 있을는지?
<광마 마광수, 1989>
'여행 사진 > 스크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강박증 관련 영화 (0) | 2010.11.29 |
---|---|
[스크랩] 낙태시술 의사에 징역 6월·면허정지 1년 중형 (0) | 2010.11.26 |
[스크랩] 낙태 시술 중단에 따른 문제점 및 입법과제 (0) | 2010.11.26 |
[스크랩] 안철수 교수 특강 - 아이폰의 교훈 3가지 (0) | 2010.06.16 |
[스크랩] 그리운 악마 (0) | 2010.03.18 |